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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진수필] 매생이와 함께가는 행복한 길 - 8. 드러나지 않는 믿음
엔존B&F
작성일 : 13-09-23 13:52  조회 : 9,161회 
"매생이와 함께가는 행복한 길"  

             
 
  
 [ 지은이 - 김영진 (주)엔존B&F 대표이사]
 
 한국지체장애인 연합회 고문역임
 보건복지부장관 표창
 동아시아 Inter-regional 컨퍼런스 부회장
 사랑의 도시락 보내기 운동본부 이사
 구겍청장 표창 - 성시납세자
 대통령 표창 - 사회복지증진기여
 로스엔젤레스 상공회의소장 감사장 수여
 동북아대학생 교류회 회장
 부산생물산업협회 회장
 해양생물육성센터 운영위원
 지역혁신특성화사업 운영위원
 한국프랜차이즈 마케팅대상 수상
 중소기업경영대상 수상
 신기술혁신상 수상
 한방실버웨니스사언 운영위원
 칼럼리스트
 
 
              
 
 
 
8. 드러나지 않는 믿음
 
 
나는 뒷모습이 고운 사람을 좋아한다. 눈이 크고 코가 오똑하고 피부도 하얗고. 미인으로서의 조건을 아무리 갖추어도 뒷태가 좀 흐트러져 보이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경우 웬지 실망스럽다. 고개를 너무 숙이고 걷는다거나 보폭이 맞지 않다거나 어깨가 좀 굽었다거나 걸음걸이가 불안정하다거나 딱 집어낼 수는 없지만 뭔가 균형이 어긋나 보이는 뒷모습은 실망을 넘어 배신감을 주기도 한다. 앞모습이 예쁠수록 더 그런 것 같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곧잘 취향이 까다롭다는 말을 듣게 되는데 어쨌거나 내가 가진 미추의 기준은 그러하다.
 
기업을 운영해 나가는데 있어서도 나는 뒷모습을 중히 여긴다. 아무리 품질이며 가격이며 서비스 등의 경쟁력이 우수하다 해도 보이지 않는 곳이 명쾌하지 않으면 자신이 없어진다. 예를 들자면 제품 하나가 기획에서 생산에 이르기까지 나를 비롯한 직원들의 마인드, 회사의 이미지, 소비자에 대한 영업 외적인 배려 같은 것들. 특히 나는 식품을 아이템으로 하는 사업을 하는 사람으로서 보이는 곳에서든 보이지 않는 곳에서든, 한 순간이라도 위생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소비자들은 포장지에 명시된 회사와 국가기관의 인허가 사항만 믿고 제품을 구매한다. 그 제품이 원산지에서부터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고 포장이 되었으며 포장 전후의 보관 상태가 어떠했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만드는 사람은 안다. 제품 하나가 소비자에게 전달되면서 거치게 되는 모든 공정을. 보이지 않는 곳이 맑아야 하는 이유는 소비자가 직접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곳이 더 잘 보이게 할 수는 없을까?’ 지금껏 식품 제조업을 해오면서 늘 머리를 떠나지 않는 화두 중의 하나가 그것이었다.
 
처음 내가 간부회의에서 생산동에 CCTV를 설치하자고 제안했을 때 직원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봤었다. 마치 오른 팔에 붉은 완장이라도 차고 교대 근무를 서가며 생산직 사원들을 감시하려는 거냐는 듯한 분위기였다.
 
생산부 직원들을 감시하려는 게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곳을 보여주려는 것뿐입니다. 가뜩이나 불신이 많은 식품시장에서 우리가 얼마나 위생적으로 가공하고 있는지 소비자가 직접 볼 수 있다면 그보다 확실한 홍보가 있겠습니까?”
 
그때서야 간부직원들은 표정을 풀었다.
 
시장에 기업을 공개함으로써 기대되는 효과는 신뢰다. 신뢰는 경제학의 거래비용이론에서 자산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렇게 볼 때, 소비자로부터 신뢰를 받는다는 것은 액면가가 명시된 주식보다 더 확실한 자산을 확보한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다. 로마 교황청의 경비를 스위스 용병에게 맡기는 예를 굳이 들지 않더라도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자산이 얼마나 위력이 있는지 알 수 있다.
 
내가 작업환경을 공개하겠다고 나선 이유는 소비자가 볼 수 없는 곳에서 얼마나 위생적으로 제품을 만들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 외에 또 하나가 더 있다. 그것은 소비자의 알 권리에 힘입어 건전하지 못한 식품 업체들의 퇴출 또는 개선을 도모하자는 것이다. , 우리 회사를 필두로 작업 상황을 공개하기 시작하면 위생과 환경에 자신이 있는 업체는 너도 나도 기다렸다는 듯이 공개를 하게 될 것이고 보이지 않는 곳을 보여줄 준비가 안 된 업체는 스스로 자구책을 찾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소비자의 이목이 두렵지 않을 환경으로 개선하거나 자폭하거나.
 
그 날 간부회의가 끝나고 바로 생산동에 CCTV를 설치해 홈페이지에 실시간으로 공개하는 작업을 지시했다. 그러나 직원들은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면서 유보를 요구했고 우선 전문 프러덕션에 촬영을 의뢰해 생산 현장의 동영상을 홈페이지에 띄우는 것으로 합의점을 찾았다. 사실 직원들 말대로 생산부 직원의 동선 하나하나를 내보이는 일이 무리가 따르기는 하겠지만 식품 업계뿐 아니라 모든 제조업이 원료에서 제품에 이르는 전 과정을 반드시 공개해야 한다고 본다.
 
역지사지(易地思之)’ 내가 기업을 운영하면서 늘 실행에 옮기려고 노력하는 말이다. 내가 고객의 입장이라면 무엇을 바라겠는가?
 
어느 날 아침, 출근 준비를 하느라 면도를 하면서 급하게 아내를 불렀다. 아내는 훈련이 잘 된 사냥개(?)처럼 메모 준비를 하고 욕실 앞에 섰다. 면도 거품이 잔뜩 묻은 얼굴을 거울로 들여다 보며 저온창고라고 말하자 아내는 날렵하게 받아 적었다. 총에 맞고 떨어지는 참새를 땅에 닿기 전에 물어오는 사냥개의 자세 그대로였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게 내가 아침 면도를 할 때면 아내는 메모 준비를 하고 욕실 앞에 선다. 무엇이든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대로 메모를 하는 버릇이 있는 내가 세수나 면도를 하느라 손이 젖어 있을 때 유독 기발한 아이디어가 많이 떠오르는 건 무슨 법칙인지 모르지만 아무튼 아내는 아침 면도를 할 때마다 충직한 사냥개처럼 메모를 대신 해 주는 것이 오래 전부터의 습관으로 굳어져 있다.
 
그 날 아침 출근길에 저온창고라고 적힌 메모를 보면서 원료를 납품하는 협력업체 대표들에게 약속을 잡을 것을 지시했다. 하필이면 면도 거품이 묻은 얼굴을 보고 있을 때 그 생각이 났는지 이유를 댈 수는 없지만 내가 소비자라면 생산 업체에서 제품이 만들어지기 전, 원료가 납품되는 과정이 어떠한지 궁금할 것 같았다.
 
생산 공정의 위생도 중요하지만 원료의 보관 상태가 우선 보장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급했다. 저온창고가 있다 해서 매출이 오른다거나 딱히 다른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소비자에게는 사각지대지만 제품을 만드는 입장에서는 더 밝은 조명을 켜야 하는 곳이 바로 원료의 보관 상태라는 생각이 들자 더욱 서둘렀다. 결국, 네 군데의 협력업체로부터 저온 창고를 조속히 준비하겠다는 보고를 받고 직접 확인하는 절차를 거쳐 원료의 보관마저도 간섭하는 까다로운 회사로 낙인찍히는 결과를 가져오기는 했지만 더 일찍 실행되었어야 하고 모든 기업이 실행해야 하는 일인 것은 틀림없다.
 
내가 맡은 부분이 아니라 해서 또는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내 책임이 아니라 해서 넘어가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고객은 이제 신이다. 신은 다 안다. 고로 고객은 다 안다. 무엇이든 다 아는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방법은 요구가 있기 전에 준비하는 것이다. 무엇이 고객을 만족시키고 감동시키는지를 연구하고 또 연구해야만 좋은 제품이 나온다. 좋은 제품이란 보이지 않는 곳까지 신뢰할 수 있어야 하고 고객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주는 기업에서 만드는 것이다.
 
식품업계에 대한 불신을 없애고 더불어 회사 내의 시스템적 문제 진단을 위해 부산광역시에서 시행하는 10대 품질경쟁력 우수업체와 산업자원부에서 시행하는 품질경쟁력 50대 우수기업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지방의 작은 기업으로서 심사에 출사표를 던진 것은 고객이 만족하는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서였다. 이를테면, 수험생이 자기 진단을 위해 모의고사를 치듯이 SPC(통계적 공정관리), SQC(통계적 품질관리), TPM(전사적 생산보전), 신뢰성, 물류, 제품개발 기술력, 소집단 개선 활동, PL(제조물 책임) 등의 심사 항목을 점검해 우리 회사가 미흡한 점을 찾아 보완하겠다는 의지였던 것이다.
 
준비 기간 중 회사 내에서는 얻는 것보다 잃는 게 크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았지만 고객의 입장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회사에 대한 공신력임을 내세워 강행을 했다. 그 결과 부산광역시의 10대 품질경쟁력우수업체와 산업자원부의 품질경쟁력 50대 기업에 연속으로 선정되는 영광이 주어졌다. 식품회사로서는 유일했다. 식품업계에 대한 불신의 골을 메꾸어 보겠다던 신념이 현실로 보여지는 것 같아 기쁨이 더했다. 내친 김에 성실납세자 표창, 그리고 직원들과 한몸이 되어 벌였던 소년 소녀 가장 돕기와 결식아동 후원 등의 사회사업 공로로 보건복지부장관 표창과 대통령 표창에 이르기까지 기업공신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섰다. 그 후 시너지는 굉장했다.
 
그러나 그러한 영광의 순간들마다 마냥 기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모 은행 지점장을 접대하는 자리에서 직접 발바닥을 주물러주면서까지 대출 기간 연장을 하고 간신히 부도를 막았던 일, 반 년 동안 집에 생활비를 주지 못해 아침에 학교 가는 아들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하던 기억, 집에 혹시 쌀이 떨어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온 종일 끼니를 한 번도 챙기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집에 가서 저녁 달라는 말을 차마 못하던 생각까지, 어려웠던 시간에의 회한이 영광과 더불어 채찍이 되기도 했다.
 
CHANGE(변화)를 나타내는 단어에서 GC로 바꾸면 CHANCE(기회)가 된다. , 변화 속에는 기회가 숨어 있는 것이다. 고객의 요구는 끝없이 변화한다. 진정으로 고객을 만족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기업이라면 변화 속의 기회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기회가 주어지는 바탕에는 신뢰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늘 잊지 않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