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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진수필] 매생이와 함께가는 행복한 길 - 9. 매생이와 함께 가는 행복한 길
엔존B&F
작성일 : 13-09-26 10:15  조회 : 9,717회 
"매생이와 함께가는 행복한 길"  

             
 
  
 [ 지은이 - 김영진 (주)엔존B&F 대표이사]
 
 한국지체장애인 연합회 고문역임
 보건복지부장관 표창
 동아시아 Inter-regional 컨퍼런스 부회장
 사랑의 도시락 보내기 운동본부 이사
 구겍청장 표창 - 성시납세자
 대통령 표창 - 사회복지증진기여
 로스엔젤레스 상공회의소장 감사장 수여
 동북아대학생 교류회 회장
 부산생물산업협회 회장
 해양생물육성센터 운영위원
 지역혁신특성화사업 운영위원
 한국프랜차이즈 마케팅대상 수상
 중소기업경영대상 수상
 신기술혁신상 수상
 한방실버웨니스사언 운영위원
 칼럼리스트
 
 
              
 
 
 
9. 매생이와 함께 가는 행복한 길
 
 내가 처음 매생이를 만난 것은 20024월의 어느 날, 벚꽃 더미가 눈처럼 경내에 쌓여있던 어느 절을 다녀오는 길에서였다. 그 때 나는 아내와 차남과 함께 관광버스를 타고 전라도에 있는 어느 절에 탱화를 불사하고 그 점안식을 보러갔었다. 사실 나는 불교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고 주기적으로 절에 다닌다거나 법문을 들어볼 기회도 없었다.
 
한 마디로 불교를 비롯해 모든 종교에 문외한이었다. 그런 내가 적지 않은 돈을 절에 기부하고 시간을 내서 그 먼 길까지 다녀온 데에는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세월이 이만큼 지난 지금도 이 이야기를 하려면 가슴이 먹먹해지는데 다름이 아닌 나의 차남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지만 병들어 아픈 자식만큼 마음이 쓰이는 자식은 없을 것이다. 똑똑하고 잘 난 놈이야 제 능력껏 살게만 해주면 그만이지만 못나고 아픈 아들은 아무리 품어주고 핥아줘도 늘 애가 탄다. 나의 두 아들 중 차남은 장애를 가지고 있다. 소아정신과에서 내린 진단명은 틱장애(tic disorders)또는 뚜레증후군이라고 하는데 뇌 속의 신경전달물질 중의 하나가 균형이 맞지 않아 의식이 몸을 지배할 수 없는 병이다.
 
평소에 눈을 좀 깜박거리거나 가끔 머리를 흔드는 버릇이 있기는 했지만 그것이 병이라고는 여기지 못한 채 초등학교 이학년이 되고 난 직 후, 갑자기 스스로 주체 못 할 만큼 팔과 다리가 제 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입원을 했다. 두 달 동안 대학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이런 저런 검사를 거쳐 진단을 받고 퇴원을 했다. 퇴원을 한 건 아이가 병이 나아서가 아니라 입원을 해서 특별한 치료를 해야 하는 병이 아니어서였다.
 
병원에서든 집에서든 하루 세 번 알록달록한 알약들을 삼키는 게 치료의 전부였다. 아픈 자식을 두고 보는 부모 마음으로는 내 몸 속의 장기를 떼어 준다거나 남다른 간병을 해서 도움이 된다면 뭐든지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근육이 굳거나 심하게 갈증과 더위를 느끼거나 살이 쪄버리거나 하는 부작용을 동반하는 색색의 알약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퇴원은 했지만 몸이 워낙 제멋대로 움직여대는 통에 혼자 밥을 먹거나 세수도 하지 못하고 학교도 갈 수가 없었다.
 
가만히 있다가도 저절로 손이 번쩍 올라가거나 꽥꽥 고함을 지르거나 배 근육이 제 멋대로 움찔거려 춤을 추는 것 같은 몸짓을 해가며 온 종일 멀거니 창밖만 내다보는 아홉 살의 아들. 본인은 물론 가족에게도 살이 발리고 뼈가 찢기는 아픔이었다.
 
워낙 희한한 병 증세를 보이다보니 아이는 집 앞의 놀이터 출입도 하지 않으려 들었고 햇빛을 보지 못해 얼굴은 누래지면서도 눈에 띄게 살이 붙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시간이 지나면 지난 꼭 그 시간만큼 일정하게 체중계의 숫자가 커져갔다. 그렇다고 억지로 데리고 나가 운동을 시킬 수도 없는데다가 아무리 부작용으로 살이 찌더라도 약을 끊을 수도 없는 일이고 보니 정말 미칠 노릇이었다.
 
아들이 그런 듣지도 보지도 못한 병에 걸리고 나자 아내는 절에 가서 불공을 드리기 시작했다. 나나 아내나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오로지 정성뿐이었다. 아이가 투병을 시작하면서 꼬챙이처럼 말라가던 아내가 그나마 힘을 내서 아들을 절에라도 데리고 다니기 시작한 건 나로서는 큰 위안이었다. 이미 우울증과 대인기피증까지 생겨 외출이라고는 하지 않던 아이가 마다 않고 제 엄마의 절 걸음을 따라 나서는 것만 해도 그저 고마웠다.
 
그러다 어느 스님으로부터 전라도의 산세 좋은 절(법우선사)에서 법당을 증축해 옮겨 짓는데 아이를 위해 탱화를 시주하지 않겠느냐는 제의가 들어왔다. 사실 비종교인의 입장에서 교회나 절 건물을 새로 짓고 늘여 짓고 하는 걸 보면 뭔가 비본질적인 것이 종교를 앞서는 건 아닐까 하는 막연한 반감이 있어왔는데, 자식이 아프다보니 내가 돈을 들여서 좋을 일이 있다면, 아니 아무리 돈이 들어도 아이에게 해만 되지 않는다면 무슨 일이든 하고 싶었다.
 
자식을 대신해 아파주지 못하는 부모의 마음은 다 같을 것이다. 모르긴 해도 자식 앞에서는 객관적이고 이성적이었던 모든 생각이 하루아침에 비이성과 맹목으로 변하는 것도 당연하다고 본다. 그렇게 해서 회사 일이 한참 바쁘던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하루를 고스란히 내어 오십 여명의 신도들과 함께 관광버스를 타고 전라도로 향했다.
 
뇌에 직접 작용하는 약을 먹고 있는 터라 눈빛이 흐리고 몸이 제멋대로 움찔거리는 아이를 데리고 법당 증축의 마지막 절차인 점안식을 보러가는 마음은 차창으로 지나가는 봄날의 온기마저도 서러울 만큼 참담하고 아렸다. 그런데 점안식이라는 것이 일종의 축제인만큼, 중년의 아줌마가 대부분인 관광차 안의 신도들은 흐드러지는 벚꽃만큼이나 들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네 시간 가까이 보내게 되는 차 안에서의 시간도 춘흥을 이기고 있기에는 지루했는지 어느 순간 마이크가 나타나는가 싶더니 고성능의 엠프까지 슬금슬금 모습을 드러냈다. 일행을 안내해 가고 있는 스님의 정도껏 하라는 지시가 떨어지자마자 관광차 안은 그야말로 관광버스 분위기로 바뀌고 말았다.
약에 취해 자고 있는 아이를 안은 나와 아내의 마음을 꼭 헤아려 주기를 바라서라기보다는 버스 통로에서 춤을 추는 게 위험하기도 하고 보기에도 좋지 않은 것이기에 자제를 부탁하고 싶었지만 상황은 이미 그게 아니었다.
 
마이크를 넘겨가며 노래를 부르다가 드디어 통로로 나온 아줌마들은 기어이 나를 끌어내 버스 통로에 세우고는 앞뒤로 막아서서 옴짝달싹 못 하게 만들고 말았다. 그 때 나는 생각했다.
 
그래. 배고픈 사람에게는 밥을 시주하고 탱화가 필요한 곳에는 탱화를 시주하고 춤추고 싶은 사람에게는 춤을 시주하자.’
 
무려 두 시간 반 동안 나는 버스 통로에 서서 춤을 추었다. 종교가 뭔지도 모르고 시주가 뭔지도 모르지만 지금 이 순간, 춤추고 놀아주면서 이 아줌마들의 마음을 기쁘게 해준다면 그게 바로 시주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었다. 나중에 아내에게 들은 말로는 허벅지에 멍이 들어가며 춤을 추고 있는 내 모습이 꼭 기도를 하고 있는 것 같더라고 했다.
 
그렇게 기도인지 춤인지 모를 난리 끝에 당도한 절에서 경건하고 엄숙하게 점안식을 마치고 불교 합창회의 공연과 마당놀이까지 다 보고 나서 일행은 다시 관광차를 타고 점심식사를 하러 갔다. 절에서 점심 공양을 할 수도 있었지만 모처럼 산 좋고 물 좋은 곳으로 간 김에 좋은 음식을 먹고 오자는 스님의 사전 계획대로 우리가 간 곳은 전라도 특유의 맛깔스러운 반찬이 가지런한 한식집이었다.
 
거기서 나는 매생이를 처음 만났다. 색색의 음식들이 모양도 좋게 도열한 가운데 초록이 타래를 지어 떠 있는 맑은 국물. 남녀가 한 눈에 반했을 때 흔히 필(feel)이 통한다고 하는데 나는 매생이를 보는 순간 엄청난 필이 내 심장에 팍 소리를 내며 꽂히는 걸 느꼈다. 어쩌면 저렇게 선명한 초록이 있을 수 있는지. 다른 음식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매생이국 한 그릇을 뚝딱 먹어치운 뒤 다시 한 그릇을 청하면서 왠지 속이 말갛게 정화되는 느낌이었다는 건 결코 과장이 아니다.
 
그렇게 매생이와 첫인연을 맺고 이년 여의 세월이 지났다. 초록색을 보면 매생이를 떠올리기는 했지만 생활에 묻혀 잊고 있었다. 그런데 2004년 초겨울, 서울 목동에 있는 홈쇼핑 방송국에 갔다가 제작팀과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매생이와 감격적인 재회를 했다.
 
보기만 해도 온몸이 초록으로 물들 것만 같은 맑은 빛의 매생이국을 다시 보는 순간, 잊고 있었던 첫인상과 더불어 춤을 추며 타고 가던 관광차와 점안식 그리고 앞이 보이지 않던 차남의 병세까지 여러 생각이 스쳐갔다. 차남은 병을 발견하고 꼬박 이 년 동안 국내외의 병원은 물론이고 심리치료, 미술치료, 원예치료 등 백방으로 방법을 동원해봤지만 증세는 전혀 호전되지 않고 있었다.
 
다만 아이 자신도 그렇고 가족도 그렇고 아이가 보이는 특별한 증세와 특별한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 있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매생이국을 두 번째로 먹게 되었을 때는 그 식당으로 나를 데리고 간 사람으로부터 어느 정도의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남도의 깊은 바다, 그 중에서도 청정해역에서만 자라고 양식이 되지 않기 때문에 예전 같았으면 타지 사람들은 구경도 못했을 텐데 워낙 정보나 교통이 빠른 시대가 되다보니 이제 서울에서도 먹게 되었다며 자랑을 늘어놓았던 것이다.
 
그 말을 듣자 내가 매생이의 초록빛에 그렇게 끌린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때마침 여기 저기 웰빙 열풍이 불고 있고 먹거리에서 건강을 찾으려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어서이기도 했지만 웰빙의 대표적인 칼라는 초록이라는 것이 내 잠재의식에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초록에 대한 이러한 생각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그 후 또 시간이 지나갔다. 그 사이 차남은 학교를 다니다가 말다가 하면서 오학년이 되었고 전국을 휩쓸고 있는 웰빙열풍은 가라앉을 줄을 몰랐다. 웰빙(well being) , 존재의 안녕. WHO(국제보건기구)의 헌장에 의하면 웰빙과 관련된 건강의 의미는 신체적정신적사회적으로 완전히 안녕한(well-being)상태를 말하며, 단순히 질병이나 질환이 없는 상태를 일컫는 것이 아니다라고 정의 되어있다.
 
사실 웰빙이라는 용어가 갑자기 유행한 것은 아이러니였다. 언제 어느 때를 막론하고 자기의 존재가 안녕하지 않기를 바랐겠는가. 자기 자신의 안녕을 도모하는 일을 좀 더 구체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결국은 웰빙열풍의 실체일 것이다.
 
나는 수 년 전부터 식품에 있어서는 바다가 답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지구상의 생물은 3500만 종. 그 중에서 해양생물은 50만 종이고 우리나라의 해조류는 500종 정도이다. 해조류 중에서 식용이 가능한 것은 37종인데 바다 속의 영양가를 그대로 지니는 우수 식품이다. 아무리 친환경이니, 유기농이니 해도 농약과 오염에 바로 노출되어 있는 토양에 비해 바다는 안전하다. 특히 세계 각국에서 보고되는 자료들을 보면 토양생물에 비해 해양생물이 지닌 유용성이 훨씬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분명 미래의 식품은 바다가 주도해 갈 것이다.
 
현재 나는 마린바이오사업을 하고 있는데 내가 주력하고 있는 것은 그 중에서도 매생이다. 앞에서 말한 두 번의 인연으로 매생이가 내 발목을 붙든 것인지 바다에서 나는 그 무엇으로 꼭 사업을 해보고 싶은 열망이 매생이를 향해 나를 몰아갔는지, 어느 쪽이 먼저인지는 몰라도 매생이를 비롯한 해조류가 결국은 전 세계의 식탁을 주도해가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러한 확신을 뒷받침해주는 것이 나의 차남이다. 지금 녀석은 육학년이 되었고 처음 병을 앓을 때보다 키는 십오 센티가 자랐고 체중은 십 킬로가 줄었다. 작년까지 십오 킬로를 감량하기도 했지만 키가 쑥 크면서 체중도 오 킬로 정도 불었다. 그래도 지금은 어디를 가든 비만이라는 소리는 듣지 않는다. 쉴 새 없이 소리를 지르고 몸을 움직이던 증세도 많이 좋아져 학교도 잘 다니고 있다. 병원이라는 병원은 문턱이 닳도록 다녀도 안 되던 것이 끼니때마다 빠지지 않고 매생이를 먹이면서부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갑자기 불어난 살 때문에 남성복 매장에 가서 허리가 삼십사 인치인 바지를 사다가 길이를 잘라 입혀야 했던 것이 이제 아동복 매장에서도 옷을 사 입힐 수 있게 됐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나흘에 한 번씩 변기에 앉아 그렇게 용을 써가며 보아야 했던 변이 지금은 너무도 자연스럽다.
 
녀석이 한 번 대변을 보자면 화장실 안과 밖에서 온 식구가 따라 용을 쓰며 응원(?)을 해야 했고 일이 끝 난 후에는 딱딱한 변 때문에 변기가 막히기 일쑤였다. 그러던 것이 매생이를 먹기 시작한 지 사흘이 채 되지 않아 화장실 밖에서 응원할 일도 압축기로 변기를 뚫을 일도 없게 되었다. 하루에 꼭 세 번씩 먹던 변비약도 단 번에 끊었지만 전혀 문제가 없었다.
 
흔한 증상이기에 쉽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 변비는 인체에 치명적인 독이 된다. 장 내에 변이 오래 머물게 되면 유해균들이 음식찌꺼기와 담즙산을 이용해 발암물질을 만들거나 강한 독성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배변에 꼭 필요한 섬유질을 약이라 생각하고 먹어야 한다. 식이섬유가 매생이만큼 많이 함유된 식품도 드물다는 것을 알고 나서 무조건 먹이기 시작한 결과 차남은 지금 변비로부터 완전히 자유롭다.
 
그 다음 아이에게 일어난 변화는 간기능과 혈행속도가 정상으로 돌아온 것이다. 아이의 병에 대한 원인이 의학계에서는 특별히 밝혀진 게 없지만 오염된 환경이 그 주범이라고 보는 나는 육지에 비해 열악한 환경이라 할 수 있는 바다 속에서 서식하는 해양생물은 독특한 방어체계를 가진다는 것에 주목했다. 해조류를 포함한 해산물들은 노폐물의 직접적인 배설은 물론 이차적으로 발생하는 독성을 제거하는 기능이 강한데 매생이가 그 중 으뜸일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난 뒤에는 차남에게는 매생이가 큰 도움이 될 거라고 결론지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매생이가 유해물질을 배출시켜 준다면 환경오염으로 생긴 병을 가진 경우, 그 원인이 제거된다는 뜻이 아닌가? 특히, 오염물질이 유입되면 저절로 녹아버리는 매생이의 특성상 가장 깨끗한 곳에서만 생육하는 생물이니 그 특유의 무공해성으로 공해에 찌든 몸을 정화시키는 기능도 있을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