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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진수필] 매생이와 함께가는 행복한 길 - 13. 사막을 건너는 사람들
엔존B&F
작성일 : 13-10-10 09:39  조회 : 11,223회 
"매생이와 함께가는 행복한 길"  

             
 
  
 [ 지은이 - 김영진 (주)엔존B&F 대표이사]
 
 한국지체장애인 연합회 고문역임
 보건복지부장관 표창
 동아시아 Inter-regional 컨퍼런스 부회장
 사랑의 도시락 보내기 운동본부 이사
 구겍청장 표창 - 성시납세자
 대통령 표창 - 사회복지증진기여
 로스엔젤레스 상공회의소장 감사장 수여
 동북아대학생 교류회 회장
 부산생물산업협회 회장
 해양생물육성센터 운영위원
 지역혁신특성화사업 운영위원
 한국프랜차이즈 마케팅대상 수상
 중소기업경영대상 수상
 신기술혁신상 수상
 한방실버웨니스사언 운영위원
 칼럼리스트
 
 
 
13. 사막을 건너는 사람들.
 
쉬지 않고 모래를 일으키며 바람이 부는 사막을 건너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발목까지 푹푹 잠기는 모래능선 외에 있는 것이라고는 내 그림자 하나가 전부인 곳. 어디를 둘러봐도 끝없이 이어지는 모래 뿐, 내 몸을 막아줄 바늘 하나 서 있지 않은 사막에 혼자 서서 마구 바람을 맞고 있다면? 더구나 눈을 비벼가며 더듬어가는 길가에는 군데군데 유골이 나뒹굴고 있기까지 하다면.
 
생각만 해도 막막하다. 내가 처음 매생이 소재 사업에 뛰어들면서 가졌던 막막함이 이러했다. 정보도 없고 자료도 없고 누구 하나 조언해 줄 사람도 없이 단지 입에서 입으로 좋다는 말만 무성하던 매생이. 생각해보면 그 황무지를 개간해 자료를 이만큼 체계화시키고 공신력을 얻어낸 것 만해도 사막을 반 이상 건넌 셈은 되는 것 같다. 그러나 아직도 가야할 길은 멀고도 험해 힘겹기는 마찬가지다. 매생이 한 팩을 짊어지고 사막에 첫발을 디디고 나서 이제껏 열기와 목마름으로, 때로는 추위와 고독으로 단련되어 오던 날들을 돌아보면 지금도 숨이 턱에 찬다. 선구자가 외로운 것은 예기치 않은 시행착오에 온몸이 노출 되는 위험을 고스란히 떠안고 가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매생이에 관한 사전조사를 어느 정도 끝내고 처음으로 수매를 했을 때의 일이다. 식품제조업을 십오 년 넘어 해오면서 국내외의 웬만한 식품에 대해서는 지식과 정보가 제법 두둑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매생이만큼은 워낙 귀한 것이 되다보니 특별한 선별 기준을 갖지 못한 채 구매에 나섰다. 나름대로 사전조사와 시장정보를 갖고 구입한 매생이는 삼천만 원어치. 그런데 그 매생이는 포장작업에 들어가기 직전에 폐기처분 되고 말았다. 이른바 끝물로 불리는, 질이 떨어지는 것을 사게 된 것이었다. 가뜩이나 초기투자가 예상수위를 넘기고 있어 어깨가 무겁던 터에 돈 주고 사온 원료를 그대로 내다버리는 마음이 오죽했으랴. 하지만 그 덕에 나도 직원들도 이제 매생이를 가려내는 눈이 밝을 대로 밝아져 농담을 좀 보태자면 냄새만 맡아도 상품(上品)인지 끝물인지를 구별해낸다. 한마디로 비싼 과외를 받은 셈이다.
 
그것 보다 더 마음이 아팠던 일은, 부분임가공업체가 부도가 나는 바람에 업체 창고에 들어있던 우리 매생이가 채권자들의 손에 고스란히 넘어가버린 일이다. 법적 절차를 밟아 되찾아오려면 어려울 것도 힘 들것도 없었지만 도산까지 가버린 임가공업체도 그렇고 그로 말미암아 손해를 보게 된 채권자자들도 얼마나 절박했으면 그랬을까 싶어 그냥 두기로 했다. 본의 아니게 남의 품앗이를 우리 매생이로 대신해주면서 내가 바랐던 것은 단지 그 매생이들이 상하지 않고 무사히 누군가의 식탁에 올라 주었으면 하는 것 뿐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시기를 같이 해 매생이 이차 상품 개발 업체 중 한 개 회사도 부도가 나 계획에 차질이 생겨버렸다. 연이은 두 개 회사의 도산으로 우리 회사(엔존)가 입은 피해는 적지 않았다. 기업의 도산이란 그렇게 여파가 크고도 멀리 가는 것이어서 어떤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할 일이지만, 사업이라는 게 쉬운 게 아니어서 어쩔 수 없이 여러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가 더러 있다. 특히, 한 가지 상품을 개발함에 있어 선두에 선 기업은 그 만큼 미지의 세계를 개척해 가야 하는 까닭에 도무지 짐작도 못 했던 외생변수로 쓰러지곤 한다. 때로는 오아시스를 바로 눈 앞에 두고도 딱 한 걸음을 옮길 힘이 없어 주저앉기도 하고 신기루에 현혹되어 엉뚱한 길로 들어서거나 의지와 상관없이 우회를 하기도 해야 하는 것이다.
 
맑은 바다 초록 매생이를 내놓은 지 정확히 삼 개월 만에 홈쇼핑채널을 확보했을 때만 해도 그랬다. 눈앞에 오아시스를 두고 먼 길을 우회해야만 했다. 홈쇼핑사의 목소리에 밀려 내가 적정선으로 제시한 가격보다 기어이 높여 방송이 나가게 되었다. 마음 같아서는 내 물건 내가 가격 책정하겠다는데 웬 참견이냐고 하고 싶었지만 유통파워가 있는 쪽에서 주도해가는 것이 시장의 질서이다 보니 어쩔 수 없었다. 결국 그날 방송 결과는 내 욕심을 채워주지 못했다. 첫 방송치고 성공한 편이라고들 했지만 구매의욕을 부추기기에는 가격이 적절하지 못했다는 아쉬움 때문에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래서 원래 생각하고 있던 가격대로 낮춰 케이블 광고를 하자 역시 매출이 올랐다. 내가 예상한 그대로였다. 사업을 하는 사람이 진정으로 성취감을 느끼는 것은 이럴 때이다. 단지 매출이 올라서가 아니라 예상이 적중했을 때. 시장을 예측하고 내가 계획한 대로의 반응이 내게로 돌아올 때, 편한 길을 두고 굳이 사막을 건너는 보람이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모래를 씹어가며 길고 지루하게 건너야 하는 것이 사막이더라도 늘 삭막한 모래바람만 부는 것은 아니다. 굳이 사막을 선택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겠지만 그 누구도 발을 들여놓지 않은 곳에 내 발자국 하나를 찍어 뒤에 올 누군가에게 지표가 되어준다면 맹독의 전갈도 두렵지 않은 배짱이 생긴다. 그리고 그 배짱으로부터 힘을 얻기 시작하면 비로소 모래땅으로 자신을 몰아온 의미도 선명해진다. 굴수하식수협과 합작으로 한 홈쇼핑광고에서 매진이라는 자막이 화면 가득 뜨는 걸 보는 순간, 공군의 장교 식단에 매생이국이 올라 대한민국 장교들의 체력 증진에 한 몫을 담당하게 되었을 때, 육고기를 금하는 스님들의 영양식으로 매생이가 공양될 때, 그리고 모 대기업의 판촉물로 매생이를 제안해 기대 이상의 흔쾌한 반응을 끌어냈을 때, 뉴욕, 시카고, 오클랜드, LA 등 미주지역에 수출을 하고 달러가 입금 되는 걸 확인하던 순간, 사막 한 가운데에 서 있었지만 외롭지 않았다.
 
방송국 자연다큐멘터리 프로의 한 PD를 만난 적이 있다. 해양생물에 관한 프로젝트 중에 해조류를 취재하는 것이 계기였. PD를 만나고 나서 나는 새삼스럽게, 편한 길을 두고 사막을 건너는 사람이 드물지 않게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물 속에 들어가 촬영하는 일을 PD가 직접 하는 줄 몰랐다. 전체를 프로듀스하는 중책을 맡은 사람이니 서서 지시나 하고 작가가 내미는 대본을 읽으면서 TV에 가끔 출연도 하는 것이겠거니 했다. 그런데 내가 만난 PD는 직접 카메라를 들고 바다로 들어가 촬영을 했다. 아무 보호구 없이 백상어를 찍거나 그 보다 더 위험한 일도 직접 한다고 했다. 게다가 직접 찍은 것인만큼 시나리오도 직접 쓴다고 했다. 물 밖에서 상상만 하고 있는 작가가 보지 않은 물 속에 대해 뭘 쓸 수 있겠느냐면서. 내 앞에 놓인 길에 전갈이나 없는지, 모래 폭풍이 오면 어디로 몸을 숨길지를 살피느라 정신 없이 가는 사이 내 옆에는 또 다른 사람들이 묵묵히 사막을 건너고 있었던 것이다. 팍팍한 모래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사막을 건너는 사람은 그렇게 도처에 있었다.
 
매생이와 찰떡 궁합이라는 굴에 대해 알아보느라 굴 공장을 견학했을 때도 그런 사람들을 만났다. 알아주지 않더라도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기에 군말 없이 하고 있는 사람들. 매생이를 연구하려면 매생이 뿐만 아니라 그 주변의 모든 것을 아는 게 기본이라는 생각에 거제에 있는 수산회사 중앙씨푸드다녀오고 나서 굴 한 알이 이제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6~8월 사이의 채묘를 시작으로 단련, 수하, 양성, 채취과정을 거친 후 7.2싱싱제조시스템에서 세척, 선별, 정량, 포장 등의 과정을 거쳐 식탁에 오르기까지 그 까다로운 공정을 생각하면 이렇게 싼 가격에 이런 귀한 것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 그저 감사하다. 매사가 그렇겠지만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그 하나가 내 눈 앞으로 오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도 없이 닿았을 손길들이 있다. 특히 해조류는 참으로 정성과 노력이 많이 들어가는 먹거리라는 걸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유능한 CEO들은 ‘C·E·O'의 요소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CEOChallenge(도전정신), Energetic(열정), Open mind(열린 마음)을 말한다. 어떤 어려움에서건 목표를 달성하려는 도전정신, 자신의 모든 역량을 발휘해 최대의 성과를 만들려는 열정, 상하관계가 아닌 수평적 관계로 직원들에게 마음을 열고 그들의 의견을 귀담아 들으려는 열린 마음이 필요할 것이다. 많든 적든 딸린 식구를 이끌고 사막을 건너는 CEO는 그래서 본능이 발달한다. 그들의 본능은 식구들이 골고루 목을 축이기 전에는 목이 마르지도 않고 본능적으로 전갈을 밟지 않고 갈 수 있으며 신기루인지 오아시스인지도 본능적으로 알게 된다. 물론 환경에 단련되어서이겠지만 본능마저도 제압할 만큼 험한 길을 개척해가는 사람인 것이다. 내가 가야할 길을 정확히 알고, 길이 정해지면 오로지 길에 열중하다가 길이 끝날 즈음 만나게 될 의미들을 믿으며 가고 또 가는 사람들. 그렇게 사막을 건너는 CEO들이 있다.